하얀 리본
감독 : 미카엘 하네케
러닝타임 : 144분
영화 포인트
① 세계 1차 대전 직전 어느 독일 마을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악순환!
② 200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등으로 작품성 인정 받는 수작!
③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영화 '피아니스트'의 감독이었어?! 그 영화 정말 충격이었는데!
④ 흑백영화라서 더욱 서늘하게 느껴지는 무엇!
1.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 스포일러 주의 바랍니다.)
영화의 배경은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입니다. 그 마을은 남작이라는 호칭의 성주가 있고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남작의 소작농, 하녀 등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마을에 어느 날 사고가 발생합니다. 말을 타고 오던 마을 의사가 누군가 쳐놓은 줄에 걸려 큰 부상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고인지 사건인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채 시간은 흐르고, 부상당한 의사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의사는 아내가 죽은 이후 마을의 에바라는 여인과 몰래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에바는 지체장애를 가진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습니다. 의사는 에바의 자존심과 인격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하며 에바와의 관계를 끝내려 합니다. 순순히 헤어지기 싫은 에바는 의사가 자신의 딸을 상대로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을 꼬투리 잡아 그를 비난합니다. 의사는 에바에게 손찌검을 하고 관계는 끝이 납니다. 그리고 의사는 14살 자신의 딸을 늦은 밤 집 1층에 있는 진료실로 부릅니다. 잠에 깨서 누나가 없는 것을 알게 된 막냇동생은 누나를 찾아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진료실에서 아빠와 함께 있는 누나를 봅니다. 누나를 진료실 침대 위에서 잠옷이 헝클어진 채 울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누나를 치료 중이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마을의 목사는 말도 없이 밤늦게 돌아온 자신의 아들과 딸에게 벌을 내립니다. 매를 맞고 반성할 때까지 완장처럼 한쪽 팔에 하얀 리본을 매고 있게 합니다. 이 하얀 리본은 순수와 순결을 상징하며,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고 동시에 나쁜 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고 합니다. 남작 밑에서 일하던 어느 농부의 아내는 낡은 창고에서 일하다가 밑으로 떨어져 죽는 사고를 당합니다. 농부의 가족들은 비통해합니다. 하지만 감히 남작에게 그 어떤 불만도 얘기하지 못합니다. 농부의 큰아들만이 분통을 터트리며 남작의 양배추밭을 망쳐놓는 복수를 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 복수는 예기치 못한 비극을 낳습니다. 화가 난 남작이 농부에게 일을 주지 않았으며 자신의 저택에서 일을 하던 농부의 딸도 해고합니다.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진 농부는 목을 매달아 자살합니다.
이런 일도 일어납니다. 남작의 아들이 누군가에게 잡혀가 엉덩이에 채찍질을 당합니다. 남작은 예배일, 교회에 모인 마을 사람들에게 이 일에 대한 경고성 협박을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에바의 지체장애 아들이 나무에 묶인 채 심각한 폭행을 당한 상태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목사의 아들, 딸과 친구들은 에바의 집 주위를 서성거립니다. 의사가 말에서 떨어졌을 때도 의사 집을 서성거리며 그 안부를 묻기도 했던 아이들이죠. 또, 남작 아들의 풀피리를 빼앗으려던 관리인의 아들은 그게 마음대로 안되자 남작 아들을 연못에 빠뜨립니다. 관리인은 이 사실을 알고 아들을 미친 듯이 때립니다. 그리고 얼마 후 남작 소유의 창고에 큰 불이 납니다. 마을 학교의 교사였던 남자는 목사에게 그들의 아들, 딸의 행동에 대해 자신이 의심하고 있는 바를 얘기합니다. 하지만 목사는 들을 생각도 안 하고 노발대발할 뿐이죠.
영화의 마지막은 세계 1차 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사라예보 사건의 발생과 함께 전쟁을 예상하는 사람들의 술렁거림으로 끝이 납니다.
2. 이 영화, 저는 이렇게 봤습니다.
- 폭력, 폭력, 폭력
줄거리만 들어도 영화가 무자비한 폭력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작, 목사, 의사로 대표되는 가부장적 권력 밑에서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이 겪는 폭력은 영화 안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진 않습니다. (관리인이 직접적으로 아들을 때리는 장면만 빼고) 사람들 앞에서, 혹은 가족들 앞에서 그들은 '어른'입니다. 정중하고도 엄격한 예의와 윤리를 몸소 보여주는 존재들이죠.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서 살펴보면 그들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이율배반적이고,(목사는 막내아들이 다친 새를 가져와 보살펴줘도 되는지 허락을 받자, 상처를 치료해 주고서 나중에 그 새의 자유를 위해 자연으로 보내줄 수 있는지를 아들에게 묻습니다. 아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새를 보살핍니다. 그러다 목사의 딸이 목사가 새장에서 키우던 새를 죽이는데, 막내아들은 목사가 슬퍼할 것 같다고 자신이 보살피던 새를 가져와 목사에게 줍니다. 목사는 그 새를 자신의 새장에 가두고 키웁니다.) 자신의 권위를 위해 강압적이고 통제적인 행동을 취합니다.(목사는 수음을 하는 것을 들킨 아들의 손을 밤새 침대에 묶어둡니다. 남작은 자신의 가족이 당한 일에 대해 관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보기처럼 농부의 일거리를 끊어버려 자살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관리인이 자신의 아들을 정말 개 패듯 때린 것도 어쩌면 이러한 남작의 성격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매우 일방적인 폭력을 점잖은 가면을 뒤집어쓰고 저지릅니다.(의사는 자신의 어린 딸을 노리개로 삼습니다. 에바와 끝을 낼 때 그는 에바의 육체적 더러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런데도 자신이 왜 에바와 몸을 섞었는지를 얘기합니다. 몸을 파는 여자들한테 가기엔 거리가 너무 멀고, 그렇기 때문에 자주 들를 수가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게 이유라면 이제 의사는 에바 대신 자신의 딸을 더욱 자주 노리개로 삼을 것입니다. 목사는 학교에서 성경 수업을 하고 있는데 자신이 수업에 들어갔는데도 교실은 엉망으로 시끄러웠습니다. 이에 화가 난 목사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딸을 꾸짖으며 교실 맨 뒤로 가 벽을 보고 서 있으라고 합니다. 딸은 일부러인지, 진심으로 비참하고 화가 나서인지 그 자리에서 기절합니다. 남작은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으며 자신과 헤어지겠다는 부인에게 그 남자와 잤냐고 묻습니다. 부인이 어이없어하며 아니라고 대답해도 남작은 "잤군."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 악의와 폭력의 악순환
의사가 말에서 떨어진 것도, 남작의 아들과 에바의 아들에게 폭력을 저지른 것도, 창고에 불을 지른 것도 목사의 아들, 딸을 비롯한 마을의 아이들이라는 걸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처음에 일어났던 의사의 낙마 사고는 아마도 의도치 않은 사고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아이들. 특히 목사의 아들은 죄책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은 분명 의도된 사고들입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받은 만큼의 폭력을 세상에 고스란히 되돌렸을 뿐입니다. 그 의도된 사고들에 아이들은 처음만큼의 큰 죄책감을 느꼈을까요? 두 번째 영화 포스터를 보면 다섯 아이들이 일렬로 서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학교 교사는 아이들의 저 행렬을 보고 그땐 그저 이상하다고 여겼었다는 내레이션을 합니다. 의사가 낙마한 이후였고 아이들은 의사의 집에 찾아가 이것저것을 살피고 오던 길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저게 뭘 의미하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을 맞춰 나란히 걷고 있는 아이들은 의사의 낙마 사고에 대한 일종의 동맹을 맺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누구에게도 이 비밀을 말하지 않기로 서로에게 맹세한 것입니다. 그래서 뿔뿔이 흩어져 걷는 게 아니라 한 덩어리처럼 나란히 걷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의 주제는 남작 부인이 남작과 헤어지기로 한 마음을 밝힐 때 분명히 드러납니다. 남작 부인은 자신의 아들을 더이상 이런 마을에서 키우기 싫다고 말합니다. 악의와 무관심과 폭력이 가득한 마을에 이젠 지쳤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곧 관리인이 남작을 급히 불러 사라예보에서 황태자가 저격당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 하얀 리본의 의미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세계 대전으로 확대되는 악의와 폭력에 대해서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흑백 화면에서 전해지는 차분한 일상은 어느 경우엔 더욱 냉혹하고 차갑게 느껴집니다. 순수와 순결을 상징하는 하얀 리본을 완장처럼 매달고 인간은 지독한 일들을 많이도 벌여왔습니다. 악의와 이기심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감추고 하얀 리본을 붉은 피로 물들여왔죠. 지금 이 순간도 저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인간인 저 역시 하얀 리본을 앞세우고 하얗지 않은 행동과 말들을 분명 했을 겁니다. 성찰이라는 건, 그래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는 더더욱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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