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감독 : 알폰소 쿠아론
출연 : 얄리차 아파리시오, 마리나 데 타비라 등
러닝타임 : 134분
영화 포인트
①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삶이라는 파도를 헤쳐나가는 그 여인들!
② 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등 수상!
③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는 정말 감동이었어!
④ 흑백영화에서도 선명한 색깔을 느낄 수 있구나!
1.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 스포일러 주의 바랍니다.)
보고 싶었던 영화였습니다. 우선 수상경력이 화려했고 평론가들로부터도 찬사가 이어지길래 대체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넷플릭스를 구독하지 않았던 저는 최근에서야 넷플릭스를 구독하며 이 영화를 마침내 보게 됐습니다.
'로마'는 희한한 영화입니다. 줄거리도 지극히 간단하고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도 소소합니다. 스펙터클하다거나, 눈물이 철철 흐를 만큼 거대한 감동이 밀려온다거나, 심장을 와플기로 누르는 것처럼 쫄깃쫄깃한 긴장감이 넘쳐흐른다거나, 그런 영화가 분명 아닙니다. 그런데도 13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습니다. 잔잔하고 소소한데 딴짓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멍하니 영화에 몰입하게 됩니다.
영화는 의사 남편을 둔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 분)와 그들의 아이들이 사는 집의 하녀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 분)의 이야기입니다. 클레오는 같이 일하는 하녀로부터 소개받은 페르민이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합니다. 그리고 임신 소식을 전한 그날 페르민은 종적을 감춥니다. 그리고 집주인 소피아 역시 캐나다로 출장을 간 줄만 알았던 남편이 바람이 나, 생활비조차 끊은 채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임신을 한 채로 겨우 찾아낸 페르민은 클레오를 더없이 냉정하게 대합니다. 그리고 혼자 태어날 아기를 맞을 준비를 하며 아기 침대를 사기 위해 가구점에 들렀던 클레오 앞에 용역 깡패가 돼서 멀쩡한 청년들을 거침없이 총으로 쏘아 죽이는 페르민이 나타납니다. 페르민은 당황한 채 그 자리를 벗어나고 클레오는 그 순간에 양수가 터집니다. 힘들게 도착한 병원에서 클레오는 아이를 출산하지만 아이는 이미 숨을 쉬지 않는 채로 태어났고 결국은 숨을 거둡니다. 소피아는 남편과의 관계를 끝내고 아이들과 살 길을 도모합니다. 기력 없이 지내고 있던 클레오와 소피아의 가족들은 해변으로 여행을 떠나고, 그 해변에서 수영을 못하는 클레오는 파도에 휩쓸린 아이 하나를 간신히 구해냅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소피아와 나머지 아이들이, 클레오와 살아난 아이들을 부둥켜안습니다. 그리고 클레오가 말합니다. 나는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그 말을 하며 그제야 클레오는 서러운 울음을 흘립니다. 다른 가족들은 그런 클레오를 끌어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해줍니다.
2. 이 영화, 저는 이렇게 봤습니다.
- 두 여인에게 보내는 러브 레터
영화는 얼핏 우리나라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같기도 합니다. 정치적 시위와 탄압으로 청년들이 희생당하며, 부유한 대가족과 입주 하녀, 남성들의 성적으로 무책임한 자유와 자식을 위한 여성(어머니)의 의지 등 말입니다. 우리나라와 멕시코는 비슷한 역사들이 많은 듯합니다. 영화 제목인 '로마'는 멕시코시티의 거리 이름이라고 합니다. 클레오와 소피아의 집이 로마거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더라고요. 그리고 이 영화는 감독인 알폰소 쿠아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자신의 유모이자 하녀였던 실제 인물을 클레오라는 배역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합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영화를 보면 '로마'는 어머니와 유모, 이 위대한 두 여성에게 보내는 감독의 사랑의 편지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에서 소피아의 남편과 페르민은 그다지 좋은 이미지로 비치지 않습니다. 소피아의 남편은 젊은 여성과 바람이 나 가족을 버립니다. 개인의 행복 추구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마음은 없지만 영화에서 그려지는 소피아의 남편은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충동적인 아이같이 행동하며 그저 아이들이 먼저 보내온 편지에 그제야 사랑한다고 답장하는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클레오가 양수가 터져 병원에 왔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클레오의 손을 잡아주며 감언이설을 쏟아내지만, 그럼 같이 병실로 들어가자고 하는 말엔 정색하며 시간이 안 된다고 거절하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페르민은 자신의 불우한 어린 시절까지 들먹이며 클레오에게 사랑을 고백하더니 나중에 클레오가 부른 배를 안고 찾아갔을 때 " 미친 하녀 주제에!"라고 화를 내며 클레오에게 겁을 주기까지 합니다. (정말 저 장면에서 허,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니까요? 이렇게 영화를 보며 쌍욕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 든 건 진짜 진짜 오래간만이었습죠!)
- 앞으로 나아가는 그 힘
이런 별 볼일 없는 남성들에게 버림받은 소피아와 클레오는 그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다시 걸음을 내딛습니다. 소피아는 남편이 끌고 다니던 대형 세단을 훨씬 작은 차로 바꾸며 직장도 새로 구합니다. 클레오는 아이의 죽음에 대해, 자신이 원치 않아 일찍 죽어버린 것이라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낳지는 않았지만 사랑으로 돌봐온 소피아의 아이 중 하나가 물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수영을 못하면서도 파도를 헤쳐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두 여성 모두 아이를 사랑했기 때문에 세상을 향해, 바다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 그게 바로 사랑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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