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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탐욕의 역사 한 페이지, 영화 '플라워 킬링 문'

by 양GO 2023. 10. 23.

영화 포스터

플라워 킬링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

감독 : 마틴 스콜세지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 글래드 스톤 등

러닝타임 : 206분

영화 포인트

① 달은 차오르고 기우는데 인간의 탐욕은 좀처럼 기울지가 않아!
② 이런 좋은 영화는 봐줘야 하는 게 국룰!

 

1. 주절주절

처음에 영화 포스터를 보고 일부러 60~70년대 옛날 영화 포스터 분위기를 살리려는 건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촌스러웠거든요.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버전의 포스터들을 살펴봤는데,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저 포스터보다는 괜찮았습니다. 물론 저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취향입니다만.

그리고 저 어마어마한 러닝타임에 혹시 미리 겁먹고 영화 관람을 주저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화는 10분마다 휴대폰 시간을 확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굉장히 긴 러닝타임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저는 신나 하며 영화관으로 갔습니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 믿을만한 감독, 배우의 영화라니! 얼씨구나! 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경우엔 평소에 비싸다고 생각되는 영화 티켓이 전혀 비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좋은 영화를 오랜 시간 누릴 수 있는 것은 행복입니다.

2.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어니스트(디카프리오 분)는 군대에서 제대하고 오클라호마에 있는 삼촌 헤일(로버트 드 니로 분)을 찾아갑니다. 헤일이 사는 곳은 석유 시추로 부자가 된 오세이지족이 거주하는 마을로 그는 이 곳에서 정의롭고 선한 사람으로 존경받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오세이지족 사람들이 연이어 죽음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미국 정부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으며 그 죽음에 대한 수사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삼촌 헤일은 그 마을에서 택시 기사로 일을 하고 있는 어니스트에게 몰리(글래드 스톤 분)라는 원주민 여성과의 결혼에 대해 슬쩍 운을 띄웁니다. 몰리는 어머니와 여러 명의 자매가 있었고 물론 그녀에게도 석유가 나오는 땅에 대한 소유권이 있었죠. 헤일과 어니스트는 몰리의 재산이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어니스트와 몰리는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어 아이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에 몰리의 언니, 동생, 어머니가 원인도 알 수 없는 병으로 죽거나, 살해당합니다. 몰리는 언니의 살인사건에 탐정을 붙이거나. 자신이 직접 미국 대통형을 만나 오세이지족 마을의 비극과 자신의 언니의 사건에 대해 호소하는 등 범인을 잡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리고 몰리가 이런 노력을 하고 있는 동안, 헤일과 어니스트 역시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그 분주하고 은밀한 움직임 속에서 누군가가 계속 죽어나가지요. 나중엔 몰리의 자매가 모두 죽고 몰리 혼자만 살아남습니다. 그 말은 몰리 집안의 재산이 몽땅 몰리에게로 상속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때 몰리는 당뇨병 치료를 위해 인슐린을 처방받게 됩니다. 헤일과 마을 의사로부터 건네받은 어떤 약물을 인슐린에 섞어, 어니스트는 몰리에게 주사를 놔줍니다. 그리고 몰리는 병으로 죽어가던 자신의 자매들처럼 점점 더 병세가 심각해집니다. 그 와중에 드디어 미국 정부에서 보낸 수사국 직원들이 마을에 도착해서 오세이지족 살인 사건들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과연 이 모든 살인사건의 배후엔 어떤 이야기가 도사리고 있을까요?

3. 이 영화, 저는 이렇게 봤습니다.

- killers of the flower moon

영화의 원작은 '플라워 문'이라는 소설입니다. 소설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합니다. 플라워 문은 오세이지족에게 5월의 달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5월은 꽃이 만발하는 시기입니다. 당연히 예쁘고 화려하게 잘 크는 꽃이 있고 그 반면에 그 잘 크는 꽃에 밀려 작고 약한 채로 피어있는 꽃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오세이지족의 플라워 문은 풍요와 평화를 상징하는 달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죽음과 쇠약의 이미지가 더 부각돼 보입니다. 꽃의 비유에서도 알 수 있듯 강한 자들 속에서 도태되고 상실되어 가는 약한 자들, 넘쳐나는 부(富)의 들판에서 함정처럼 움푹 파여있게 마련인 빈(貧)의 자리, 흥과 망, 성과 쇄, 이렇게 플라워 문은 삶의 양극 속에서 희생되고 파괴되어 가는 그 무언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플라워 문 아래에서 희생되고 파괴되어 간 존재가 누구였는지 말입니다. 

영화 속 장면-몰리와 어니스트의 저녁 식사 자리

- 미국(美國)은 정말 아름다운 나라일까

미국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콜럼버스가 인도인 줄 알고 도착한 그곳이 바로 아메리카였고, 이 용감무식한 자들에 의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인디언이라고 불렸다는 것. 그리고 아메리카에 정착하기 위해 들어온 유럽인들과 원주민들과의 치열한 전쟁이 있었고, 그 전쟁으로 인해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땅임에도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 후 미국 정부는 정해진 구역으로 가축 몰듯 원주민들을 몰아넣었고 그들에 대한 차별과 방임으로 원주민들이 오랫동안 고통받았다는 것 등 대략적인 내용만 알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도 사실 관련 영화를 보며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관련하여 미국 정부, 미국인들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감독 마틴 스콜세지가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물리적, 심리적 국적은 미국일 것입니다. 조국의 치부를 작품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작업은 명장과 명배우가 있었기에 매우 다행스러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흠을 들추는 작품이 만약 평범한 영화였거나 혹은 많이 떨어지는(?) 영화였으면 어땠을까요?

어떤 영화가 역사적인 치부를 드러낼 때 그 영화는 오로지 예술작품으로써의 역할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화를 다룰 때는 그것에 대한 뚜렷한 목적과 의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 사건, 사실을 모르던 사람들과 그것을 알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모두 다시 한번 뒤돌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줘야 합니다.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불리는 나라가 끌어안고 있는 그 역사들, 누군가는 웃으며 승리를 만끽할 때 누군가는 피와 상처, 눈물로 쓰러져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 명감독, 명배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42년생입니다. 여든살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훌륭한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도 그렇고, 그들의 새로운 영화가 나올 때마다 조마조마합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들의 영화를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로버트 드 니로는 이 영화에서 악역을 연기합니다. 빌런 중의 빌런이죠. 그런데도 그는 이 영화에서 전혀 악당 같지 않습니다. 사실 영화 속에서도 그는 마을에서 존경을 받는 백인 미국인으로 나옵니다.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성공한 사업가이며 마을의 오세이지족 사람들도 의지하는 훌륭한 심성의 인격자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나 현실 속에서나 가장 위험한 악당은 가장 완벽한 위선의 탈을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말이죠. 

그는 영화 내내 일관된 모습을 보입니다. 잔인하고 험악한 표정을 짓거나 악에 바쳐 소리 지르는 등 절정에 치달은 악당의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평온하고 사람 좋은 표정으로 살인을 사주하거나 협박합니다.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시종일관 평온한 그를 보며 오히려 관객들의 표정이 빌런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해봅니다. 저도 어느 순간엔 그를 보며 허, 하고 헛웃음을 흘리며 인상을 찌푸렸으니까요.

어니스트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영화 속에서 전혀 어니스트한 사람이 아닙니다. 돈이 너무 좋아 강도짓을 일삼고 그 돈을 도박으로 날려먹는 얼뜨기이지만 그는 삼촌 헤일과 대조적으로 영악한 빌런은 아닙니다. 몰리와의 결혼에 대해 삼촌의 언급이 먼저 있었지만 어쨌든 그는 몰리와 사랑에 빠져 부부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어니스트는 살짝 비열하고 조금 도덕성이 결여돼 있으며 아주 약간 뻔뻔한 인간입니다.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습니다만 결코 좋은 인간은 아니죠. 그런 어니스트를 표현하기 위해 디카프리오는 자신의 잘생김을 포기했습니다. 앞가르마도 5:5에 턱은 앞으로 내밀고 있고 전체적으로 인상이 구겨져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영화 속에서 나오는 디카프리오를 보고, '뭐야, 세월을 직격으로 맞은 건가?' 싶었습니다. 디카프리오는 극 중의 어니스트를 이미 외모적으로 충분히 완벽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빌런 중의 빌런, 헤일에게 보다 오히려 이 나쁜 놈 어니스트에게 더 분노의 감정을 갖게 됩니다. (저만 그런 가요?) 그의 가장 비열한 점은 우유부단함입니다. 사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몰리에게 한 짓 말입니다. 그는 어중간하고 우유부단하게도 자신이 잔악하고 나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잔인하고 비열한 악당이 아니라는 것을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은 절대로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일이 그렇게 되어버린 거다, 난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다,라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던 셈이었죠.

- 기타 등등(FBI의 시초, 석유라는 횡재 혹은 횡액)

몰리가 죽어가던 그때 부드러운 표정에 어쩌면 조금은 멍청 무해해 보이는 얼굴의 남자가 어니스트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자신을 미국 정부의 수사국 직원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여러 명의 동료들과 함께 오세이지족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그 동료 중에는 원주민 출신 남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을 어딘가에 모여 각자 자신이 알아온 정보들을 서로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동안 오세이지족 사람들의 연쇄 살인을 방치하던 미국 정부가 보낸 수사국 사람들, 이것이 미국연방수사국 FBI의 시초라고 합니다. 

미국 정부가 오세이지족 사람들을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시킨 후에 그 땅에서 석유가 뿜어져 나옵니다. 오세이지족 사람들은 부자가 됐고, 미국인들은 돈 냄새를 맡고 이 마을로 몰려듭니다. 자연을 신성시여기던 오세이지족 사람들에게 강제 이주와 석유라는 횡재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어버린 횡액은 석유가 아니지 않았을까요?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 건 '인간의 탐욕'이라는 횡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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