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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진실 앞에서 괴물이 될 때, 영화 '괴물'

by 양GO 2023. 11. 30.

영화 포스터- 남자 아이 둘이 풀밭을 뛰어놀고 있다

괴물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 안도 사쿠라, 쿠로카와 소야, 히이라기 히나타 등

러닝타임 : 126분

 

 

 

 

 

1. 영화 포인트

① 우리 입에서 내뱉어지는, 상대의 상처를 정확히 노리고 찌르는 괴물 같은 말!
② 진실을 감추지 못한 존재는 돼지 뇌를 갖게 되고, 진실을 감추기 위한 존재는 거짓을 말하며 눈물을 흘린다!
③ 진실을 알 수 없을 때에도, 진실을 알게 될 때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고통이 된다!

2.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초등학생 미나토(쿠로카와 소야 분)가 요즘 이상합니다. 미나토의 엄마(안도 사쿠라 분)는 아들이 갑자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운동화 한 짝을 잃어버리며 챙겨준 물통에 흙이 가득 들어있는 것을 보고 걱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귀가 다친 채로 돌아온 미나토를 추궁하여 뜻밖의 답을 듣게 됩니다. 담임선생님인 호리가 자신을 다치게 하고 너의 뇌는 돼지 뇌라고 했다고 말입니다. 미나토의 엄마는 학교를 찾아갑니다. 얼마 전 손녀를 사고로 잃은 교장선생님은 사건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으며 무의미한 사과만 반복합니다. 가해자인 호리 선생 역시 조금의 반성도 없어 보입니다. 더군다나 호리는 미나토가 같은 반 요리(히이라기 히나타 분)를 괴롭혀 왔다고 합니다. 미나토의 엄마는 거센 항의를 계속 이어가고 결국 호리 선생은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호리의 시점으로, 교장선생님의 시점으로, 마지막으로 미나토의 시점으로 전환되며 흘러갑니다. 과연 괴물은 누구일까요? 

3. 이 영화, 저는 이렇게 봤습니다.

- 괴물이라는 단어

영화 속 장면- 주인공인 아이 둘이 진흙투성이인 채로 뒤를 돌아보고 있다

영화 제목부터 우리는 무언가를 예상합니다. 그리고 초반부 미나토에게서 보이는 괴롭힘의 징후를 알아채고 미나토의 엄마처럼 확실한 그 무엇을 예감합니다. 미나토의 엄마에게 학교의 교장과 호리 선생은 그야말로 괴물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미나토 엄마의 시점에 감정을 이입하고 똑같이 그들에게 분노합니다. 책임감도 없으며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보이지 않는 그들은 정말 괴물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영화는 미나토의 엄마에게 감정 이입하던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그녀의 분노는 정당하지만 어쩐지 과하게 느껴집니다. 그 냉혹한 눈길은 마치 괴물 같습니다. 그리고 호리선생과 미나토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환될 때마다 영화는 우리의 뒤통수를 몇 번이나 두드려댑니다. '자, 영화를 보고 있는 당신, 당신은 누군가의 아주 사소한 말과 행동을 오해하고 심지어 그 오해를 진실이라 믿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물로 몰아갔습니까? 괴물은 대체 누구일까요?'라고 말입니다.

영화는 아주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우리를 오해의 구렁텅이로 몰아갑니다. 영화적 장치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사실 우리는 현실에서도 영화에서 슬쩍 보여줬던 가스 점화기 라이터를 보게 된 등장인물처럼 어떤 상황을 추측하고 예상합니다. 진실을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거나 무엇이 진실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쩌면 우린 우리의 그 추측을 의지할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이런 행동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추측이 유일한 하나의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자신이 불리하거나 상대를 누르고 싶은 상황에서 순간적인 돌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상대에게 상처가 될 것을 알면서, 알기에 일부러 상처되는 말을 하는 거죠. 이 영화에서는 그런 말들이 괴물처럼 내뱉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내뱉어지는 순간,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우리 역시 승리감과 우월감, 속 시원한 청량감을 느낍니다. 진실을 모른 채로 그저 자신의 추측에 의지한 채, 정확히 상대가 상처받을 그 영역을 예리하게 쑤시고 찔러 넣은 채 말입니다.

- 폭력과 구원

요리는 술에 자주 취해있는 아빠에게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반 아이 몇몇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죠. 하지만 요리라는 아이는 언제나 해맑습니다. 그리고 미나토는 학교에서는 요리와 아는 척을 하지 않지만 학교가 끝난 후에는 둘만의 아지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미나토는 요리의 말과 행동에 아주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 미나토의 시점에서 영화가 진행될 때 우리는 그 사실을 알게 되죠. 운동화가 왜 한 짝밖에 없었는지, 미나토가 돼지뇌 이야기를 왜 했는지, 가스 점화기 라이터를 왜 가지고 있었는지, 떨어뜨린 지우개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인 채로 왜 계속 멈춰있었는지를 말입니다. 

영화 후반, 거대한 태풍으로 산사태가 난 아지트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요리와 미나토는 진흙투성이로 더없이 즐겁게 웃으며 숲 속을 뛰어갑니다. 그 사이사이 요리를 괴롭히던 남자아이가 집에서 태풍을 보는 장면, 요리의 아빠가 술을 사 들고 가다 비바람에 젖어 길에 넘어진 모습, 교장선생님이 물가를 바라보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한 듯 보이는 미나토와 요리를 둘러싼 푸르고 밝은 배경과는 달리 그들은 여전히 거센 태풍 한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장면에서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죠. 저란 인간 역시 괴물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없이 끔찍하고 잔혹한 괴물이요. 아주 잠깐 그 괴물에게 안쓰러움을 느꼈습니다. 아무리 악하고 잔인해도 어느 날에는 초라해지고 볼품없어지는 그저 그런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 그리고 그 괴물에게도 끝내는 떼어지지 않는 상처가 존재한다는 것을. 저는 안쓰러웠고 서글펐습니다.

- 이거 약간, 개인적으로, 좀 작위적인데?

요리는 자신이 병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병과 관련해서 요리의 아빠는 요리에게 너의 뇌는 돼지 뇌라는 독설을 내뱉죠. 사실 영화 후반에 가서야 요리의 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도 영화가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건 아니고 어느 장면을 통해서 확신하게 되는 거죠. 요리의 집을 찾아간 미나토에게 요리는 난데없이 자신의 병이 이제 다 나았다고 말합니다. 어느새 뒤에 다가온 요리의 아빠는 요리가 할머니가 사는 시골에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다고 말하도록 부추깁니다. 그리고 그렇게 문이 닫히더니 잠시 후 벌컥 다시 문을 열고 나온 요리가 그건 거짓말이라고 외칩니다. 요리의 아빠는 요리를 집안으로 끌고 들어가더니 그런 것도 못하냐며 화를 내고는 또 뭔가 지독한 벌을 주는 듯한 소음이 들려옵니다.

저도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결국 미나토가 호리선생에 대한 거짓말을 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말할 수가 없었던 탓이었습니다. 요리의 아빠는 자신의 아들을 괴물이라고 대놓고 표현합니다. 병에 걸렸다고, 인간의 뇌가 아니라 돼지 뇌를 가진 거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저는 사실 영화 초반부가 반 아이들과 담임선생으로 인한 집단 괴롭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고 게다가 괴물은 누구인가에 대한 뒤통수치는 반성을 이어나가게 하는 흐름이 있었기에 결말 부분의 이 중요한 핵심적 소재 앞에서 잠깐 뭔가가 끊겨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직선으로 가다가 삐끗해서 다른 쪽으로 튀어나갔다가 다시 직선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니까 둘의 이 중요한 관계로부터 영화가 이야기를 쌓아간 게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가다가 필요에 의해 둘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만들어버린 그런, 느낌? 

이런 느낌은 또 다른 부분에서도 있습니다. 요리가 미나토의 이름을 쓸 때 글자의 방향을 좌우가 바뀌게 쓰는데 결국 이 설정의 쓸모는 나중에 호리선생이 요리의 글짓기 과제를 보고 둘의 마음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짓기 과제를 보고 호리선생은 태풍 치는 날 굳이 미나토의 집 앞에 서서 내가 잘못했다, 너는 잘못이 없다를 부르짖습니다. 편집해서 잘려나간 장면이 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설마 요리가 선생님에게 제출하는 과제에 미나토와의 특별한 감정을 솔직하게 썼을까요? 이 장면 전에 요리는 자신의 이름과 미나토의 이름을 가로로 나란히 써 놓고 (일본은 세로 쓰기) 호리선생이 이걸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지 요리와 미나토,라고 써놓은 글만 가지고 둘의 마음을 꿰뚫었고 게다가 지금까지 그 모든 일이 그 마음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었다는 것까지 100% 이해하고서 미나토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는 겁니다. 미나토 때문에 죽으려고까지 했던 사람이 말이죠. 

중요한 두 부분에서 엥? 하는 느낌은 들었지만, 뭐 어떻습니까. 이건 전적으로 저의 개인적인 주관이고, 관대하게 보자면 우린 모두 결점투성이에 실수쟁이들인데요.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닙니까?! 영화가 끝난 후의 감동과 울림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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